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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 프로필 | 별세 | 나이 | 학력 | 고향 | 가족 | 경력 | 총정리✅

2024. 9. 23.

장기표 프로필 | 별세 | 나이 | 학력 | 고향 | 가족 | 경력 | 총정리✅

 

2024년 9월 22일, 한국의 대표적인 운동권 인사로 평가받았던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향년 78세로 별세했습니다. 담낭암 투병 중이던 그는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한국 민주화 운동과 진보 정치에 큰 족적을 남긴 장기표 원장의 삶을 돌아보며 장기표 원장의 업적과 프로필을 조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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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 프로필

고(故) 장기표 선생은 1945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나 마산공고를 졸업한 후 동국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재입학하며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1960년대 서울대학교 법대에 재학 중이던 그는 시대의 암울한 그림자 속에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재야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에 헌신했습니다.

 

장기표 원장은 학생운동 후 사회 변혁을 위해 정치 활동에 뛰어들었으며, 다양한 진보 정당에서 활동하며 사회민주주의와 특권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학력

장기표 원장은 한림국민학교와 진영중학교를 졸업하고, 한얼고등학교에서 마산공업고등학교로 전학하며 화공과를 졸업하는 등 꾸준한 학업에 전념하였습니다.

 

이후 1966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공부했으나,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뛰어들며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에야 동국대학교 법과대학에서 중퇴했던 법학을 서울대학교에서 다시 학사 학위를 취득하며 마침내 학업을 마쳤습니다.

 

가족

고인은 배우자 조무하 씨와 두 딸 장하원, 장보원을 두고 있습니다. 장하원은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며, 장보원은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초빙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장기표 원장의 사위는 박재성 부산대학교 바이오산업기계공학과 교수이며, 오대영 포스코이앤씨 건축사업본부 차장도 그의 가족입니다.

 

정치 활동

장기표 원장은 1990년 민중당 창당을 시작으로 다양한 진보 정당에서 활동하며 재야 민주화 운동의 한계를 넘어 정치 무대에서의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는 이재오, 김문수 등과 함께 민중당을 창당하고 진보좌파 정당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했으나,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의원 1명 당선에 그쳤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선거에 출마했으나 당선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선거 이력

그의 선거 경력은 총 6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제14대부터 제21대 총선까지 다양한 정당 소속으로 출마하였습니다.

 

특히 1992년 서울 동작갑에 민중당 후보로 출마하여 21.50%의 득표를 기록했으며,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경남 김해을에 출마해 41.61%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장기표 원장은 그의 정치 경력 동안 총 6번의 선거에 출마하며 한국 정치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민중당 후보로 서울 동작갑에 출마해 21.50%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낙선하였고,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19.07%의 득표율을 얻었지만 당선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는 민주국민당 전국구 후보로 나서 3.6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국회 입성에 실패했습니다. 2002년 재보궐선거에서는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영등포을에 출마하여 37.74%의 득표율로 낙선하였으며,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는 녹색사민당 후보로 서울 동작갑에 출마해 4.86%의 득표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는 정통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으나 0.22%의 득표율로 낙선했습니다. 마지막으로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 후보로 경남 김해을에 출마해 41.61%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나 당선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말년 활동

장기표 원장은 말년에는 신문명정책연구원을 설립해 저술 활동과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에 집중하였고,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서 국회의원의 면책·불체포특권 폐지,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 국민소환제 도입 등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생의 목표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으나 이를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장기표 원장의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 씨와 두 딸 하원, 보원 씨가 있으며, 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되었습니다.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6일, 장지는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입니다.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아쉬움을 남겼으며, 그의 헌신적인 삶은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